
“ 변명은 그게 전부인가? ”
Coronation
Rank S
수색대대
René Fermat
대위
르네 페르마
압생트 Absinth
AGE 37
191cm

KUKI님 커미션


◆ 외관
격동의 시대도 차마 이를 훼손하지 못했다.
이 우아한 유기체의 생김새는 심미적 관점보다 역사를 통해 풀이하는 편이 이해하기 쉽다. 선이 명징하고 조화로운 조형이 흑백 영화가 유행하던 수십 세기 전 사람에 가깝기 때문이다. 아주 오래 전, 지상은 육신의 미를 장미와 상아에 빗대고 인종이니 혈통이니 하는 폭력적인 기준을 끔찍하게 아끼던 세대로 채워져 있었다. 여기에서 유래한 야만과 권위의 유산이 긴 세월을 소리없이 망명해 한 영장류의 외피에 자리잡은 것이다. 그러나 우주 세기에 이르러 미적 가치를 독점하던 시대착오적 기준들은 차례로 파면을 선고받았다. 현대의 인류는 그의 용모에서 묘한 기시감을 느낄 뿐 이 신호를 아름다움의 지표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른바 ‘고전 문화’에 취미가 있는 일부를 제외하고.
르네 페르마 대위와 옛 배우의 차이점은, 같은 나이라도 의학이 발전한 시대에 사는 페르마 쪽의 겉모습이 더 ‘젊어’보인다는 것이다(외모로 나이를 가늠하는 문화라니!). 다만 수정처럼 흰 살갗을 입은 그의 인상은 연령 따위의 사소한 요소를 압도한다. 대위를 대면한 이의 반응은 크게 둘로 갈린다. 긴장하거나, 불손하다 여기거나. 그는 웃지 않는다. 저 권태롭고 무거운 시선. 앞에 둔 상대가 누구든, 공평하게, 존재의 중심을 지그시 압박하는 선홍색의 두 눈은 끝이 조금 처진 아몬드 모양의 눈매에 감싸여 깊은 안와 속에 가라앉아 있다. 짙고 굴곡이 뚜렷한 아치형 눈썹은 대개 찌푸리는 용도로나 쓴다. 콧대와 입술은 서로 수직을 이루듯 곧고 그리 크지 않다. 어깨에 닿지 않도록 길이를 유지하는 머리카락은 빛을 받기에 따라 손질한 편백나무 목재나 밀이삭처럼 옅은 색을 띠는 고수머리이다. 반듯하게 넘겨 이마를 드러낸 모양이 기본이지만 그저 흘러내리게 두기도 한다.
이족보행을 하는 인류종 가운데 그를 올려다보는 이가 그렇지 않은 이보다 많을 만큼은 키가 크다. 사지 말단에 이르기까지 가냘프거나 무른 곳이 없는 몸은 영영 그럴 것처럼 곧다. 사소한 동작에도 군인 특유의 절도와 기품이 있어 기민한 사람이라면 걸음 소리만 들어도 그가 오고 있음을 알아챌 수 있다. 제복을 착용할 때가 많은데, 보통 드레스 셔츠 안을 같은 색의 터틀넥으로 받치고 재킷은 코트처럼 밑단을 무릎 아래까지 늘인 것으로 입으며 검은 더비 슈즈를 신는다. 깨끗한 낯과는 달리 평소 장갑으로 가리는 큰 손부터 시작해 전신에 자잘한 흉터가 많다. 칼로 자른 듯 단정한 자가 어떠한 경위로 그러한 상흔을 얻었는지 짐작하기 어려워하는 이들이 있으나, 격전의 시간을 거친 그를 목격하면 곧 납득한다. 상상해 보라: 개량을 허락하지 않은 장미와 문명이 도려내지 못한 엄니에는 어떠한 야성이 깃들었겠는가? 그것들이 고작 피 흘리는 일 따위를 두려워할까?

